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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의 찰라 같은 시간동안 얼음장 같은 정적이 흐르고 그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뜨거운 외침은 혼란의 시간을 예고한다. 관성이 사라지고 난 이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과 긴박의 상태에서 갈피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이것은 해방이 가져온 부산물이다.
1945년, 일제가 팽팽히 움켜 쥔 고삐의 힘을 풀자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은 사방에서 작용한 힘에 의해 방향을 잃고 자리를 맴돌았다.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몰랐던 이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 위에 서서 선택을 고민했다. 어떤 이는 신념에 차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달려 나갔고 다른 이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눈에 담아가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. 또 다른 이는 누군가의 강요로 먼 길을 돌아가거나,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했다.
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다른 길을 향해 간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을 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역사의 길 위에 서 있었던 영화인들의 엇갈린 행로를 통해 70년이 넘는 분단의 역사와 한국전쟁이 가져온 민족적 비극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.
앞선 자들이 남긴 뽀얗게 인 먼지 틈으로 세상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. 아쉬운 이별의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든 이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간 이들을 직시할 때이다.
전시기획 : 한상언(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), 조소연 큐레이터(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차장)